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강화도나들길

석모도 바람길 - 변화

carmina 2017. 9. 3. 14:46

2017. 9. 2

색이 변하고 있다.
강화다리를 지나니 옆에 펼쳐진 거대한 벌판에 봄 가뭄으로 늦게 심은 벼가
한국의 날씨 기록을 갈아 칠 정도로 심한 폭염을 견뎌내고 바로 뒤이어
폭우처럼 쏟아지던 거센 비를 견뎌 내고 이제 조금씩 노란색이 보이고 있다.
세월은 금방 갈 것이다.
벼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가뭄도, 폭염도, 장마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거의 2달 넘게 배낭을 들지 않았다.
무언가 인생후반의 변화를 꿈꾸고자 아무도 모르게 여름을 혼자 보냈다.

이전같으면 8월 보름만 지나면 불던 선선한 바람도 지속되는 태양빛에 잠잠히 있다가
달력이 한 장 넘어가니 겨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오늘 굳이 길을 나선 것은 변화된 강화도를 보고 싶어서였다.
몇 백년 간 강화도가 몇 번 변했던 계기는
모두 육지를 잇는 다리로 야기된 것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처음 1969년 강화대교가 들어서기 전 나는 중학생 시절에
강회도를 여행가기 위해 인천 만석동에서 배를 타고 갔었다.
다리로 인해 차량과 사람의 왕래가 많아지니 1997년에 그 다리 옆에
새 다리를 건설하고 그 또한 포화상태에 이르니
2001년 김포의 남쪽인 대명리를 잇는 초지대교가 새로운 통로가 되었다.

그래도 강화의 숨은 구석들이 많았다.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석모도가 있었고
오래 오래 변하지 않아 사랑받던 교동도가 있었다.
그러나 그 마저 이젠 섬의 역할이 끝나 버렸다.

2014년에 교동도를 들어가는 교동대교가 완성되어
사람들에게 60년대 향수를 간직했던 대륭마을이
이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그 멋을 잃어가고 있으며
올해 외포리에서 눈 앞에 보이는 석모도에 배를 타고 가며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던지던 즐거움도 석모대교가 올해 6월 말에
완공되어 강화의 인근 섬은 모두 섬이라는 이름을 버려야 했다.

 

 

길벗이 운전하는 승용차가 텅빈 외포리 주차장을 지나 석모대교를 통과하니
바로 로타리로 차들의 동선을 멈춤없이 흐르게했다.
모임 장소인 리안월드로 가는 길에 이제는 역할을 잃은 석포리 선착장의 모습을
보기 위해 잠시 들르니 이전같으면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붐비던 곳에
문을 닫은 식당들과 철제 빔으로 가로막은 선착장에 바람만 을씨년스럽게
불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
하나같이 지난 여름 폭염속에 길을 걷느라 고생했던 추억을 이야기한다.
너무 더워 쓰러진 사람들, 길을 걷다가 포기한 길벗들 등등..

이전의 석모도바람길은 석포리 선착장에 내려 바로 섬의 왼편 해안을 따라
걷는 코스였는데 이젠 버스나 승용차를 타고 가야 하니 안내자는
코스와 날씨 그리고 주차를 함께 고민을 해야 했다.

결국 몇 대의 차는 도착지인 리안월드에 주차하고 몇 대의 차는 출발지인
보문사입구의 유료주차장에 두고 모두 다 함께 보문사에서 출발하는 역코스를
걷기로 했다.

 

모두 둥글게 서서 인사를 하는 맑은 하늘에 거대한 고래구름 한 마리가
둥실 떠 있다. 아마 이제 석모도의 모든 것들의 가치가 고래처럼
불어날 것이다.

 

물이 모두 썰려 나간 둑길을 걷는다.
모든 관광객들이 보문사에 몰려가 어수선해도 이 곳은 한적하기만 하다.
우린 모두 자연인들이다.

아득하게 멀리 바닷물이 서서히 다음 육지 침공을 준비하고 있고
옷을 벗은 벌판에는 가끔 갈매기와 백로들만이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다.

 

해안가를 주로 걸으니 쉴곳도 마땅치 않고 마을도 없으니 그냥 걷는 일 뿐이다.
지난 여름에 무섭게 자랐던 풀들로 인해 걷기 어렵다는 불평들이 게시판에 있어서인지
사람 하나 지나갈만한 폭으로 해안가 풀을 정리해 놓아 쾌적하게 걸을 수 있었다.

 

일찍 세상에 나온 은빛 억새가 보문사가 있는 해명산 쪽으로 하늘거리고 있고
멀리 밀려드는 관광버스와 승용차들이 보였으며 반대편 먼 바닷가에는 바다 낚시를 즐기는
외로운 강태공이 혼자 바다를 독차지하고 있었다.

 

그 건너편에는 주문도와 볼음도, 아차도가 보인다.
인간의 욕심은 아마 그곳까지도 점령하려고 할 것이다.

둑길 옆에 바닷물을 막아 놓은 것인지 아니면 민물인지 몰라도
커다란 늪 같이 생긴 곳이 있는데 무슨 고기를 기르는 양식장같다.
이끼가 가득 쌓이고 가끔 철망이 보이는 것을 보니 양식장은 분명한데
무엇을 기르는 것을까. 문득 그 늪의 수면에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메기? 장어? 아무도 명쾌한 답변을 내 놓은 사람이 없었다.

 

둑길만 걷는 것이 밋밋하여 해안가로 내려왔다.
어차피 물이 다시 들어올려면 몇 시간 있어야 하니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
육지와 섬사이에 있는 해안가라 파도가 없어 모든 바위들이 날카롭다.
그런 야생의 길을 걷는 즐거움은 길을 잘 아는 사람이 있어 가능하다.

 

밀물에 떠 밀려 왔던 망둥어들이 그만 해지는 것도 모르고 커다란 돌틈에서 놀다가
집으로 들어가는 길을 잃어버려 고여있는 물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그것이 네게 주어진 인생이니 어쩔 수 없다.
그렇게 한 참을 바위가 가득한 길을 걸어
다시 사람들의 흔적이 있는 민머루해변으로 올라왔다.

 

그 곳에 승용차를 가지고 온 관광객들이 가득했고
보이지 않았던 집들이 해변에 듬성 듬성 만들어 지고 있다.
이제 돈이 보인다는 뜻일 것이다.

 

해물탕과 조기구이로 점심 후 들어 선 숲길은
걷기 편하게 바닥에 매트를 깔았고 중간 중간 벤치들과
운동도구를 비치해 놓았다.
그 길에 먹지 못하는 아주 큰 버섯하나가
순백의 상징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사람들이 많아질수로 자연의 미는 사라지는 것은 진리다.
나 또한 그 것에 곧 익숙해 질 것이며 과거에 어떤 모습이었는지도
금방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전에 쓰러져가는 집들만 있어 한적했던 어류정항에
큰 항만이 들어섰다. 아직 배들이 많이 드나들지 않으니
그 넓은 선착장에 소문을 듣고 온 캠핑카를 몰고 사람들이
온갖 모양의 캠핑카를 자랑하고 있다.

 

정자 옆에는 멋스러운 중형버스를 캠핑카로 개조한 사람이
가족과 함께 바비큐를 즐기고 있다.
캠핑카 내부를 보니 아주 럭셔리하게 만들어 놓았기에
물어보니 이 차를 가지고 세계일주를 계획하고 있단다.
세계일주를?
요즘 내가 지방여행에 같이 떠나는 마을버스 사진을 보여 주니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그런 여행은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떤 이가 들어가지 말라고 막아 놓은 곳에 차를 가지고 들어가
마침 순찰중이던 해양경찰이 강제로 내 쫒고 있다.
혼자서 넓게 쓸려하던 그 사람은 작은공간도 차지할 수 없는 외톨이가 되었다.

 

둑 옆에 어느 펜션에서는 마당에 커다란 풀장을 만들었다.
굳이 땅을 파고 콘트리트 작업을 하지 않아도 만들 수 있는 간이풀장.
어린애들은 이런 것이 있으면 여름이 세상 좋을 것 같다.

 

갈 길이 멀다.
길게 뻗어간 둑이 까마득하다.
아마 오늘 제 코스를 다 걸었으면 비록 폭염은 지나갔어도
우랜 시간 햇빛 받는 걸로 이미 폭염 수준의 더위가 될 것 같았다.

멀리 우리가 차량 일부를 주차해 놓은 곳인 리안월드의 한옥집이 보였다.
그 곳으로 가는 길 옆에 아주 넓은 공간에 중장비가 움직이고
토목공사가 한참이다. 골프장 만드는 중이라 한다.
어떤 모습으로 석모도가 태어날까?
누군가 이 곳에 땅을 미리 사놓은 사람들이 한 몫 단단히 건졌다 한다.
대개 이 곳 토박이들은 돈의 가치를 잘 몰라 보상금으로 받은 돈들을
유용하게 쓰지 못하는 편이다. 아마 그 들은 모두 이 곳을 떠날 것이다.
강화의 사투리인 '이랬으꺄 저랬을꺄' 하는 억양이 사라질 것이다.
할머니들 할아버지들은 어울리지 않는 복장으로 도심같이 변해버린 마을의 한 구석에서
지나는 고급 승용차들이 차창으로 버리고 가는 쓰레기들을 보고 끌끌 혀를 찰 것이다.

 

리안 월드는 온천으로 유명하다.
굳이 온천을 유료로 이용하지 않아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온천의 따뜻함을 즐길 수 있도록
발을 담글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맨발로 그 곳에 앉아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었다. 우리도 모두 등산화에서 더위에 가득한 발을 꺼내
족욕을 즐겼다. 근처의 보이는 수도꼭지에서는 모두 따뜻한 물이 콸콸 쏟아졌다.

이제 오늘 하루의 여정을 끝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지만 다음엔 완연한 가을빛이 들것이다.
아직은 감들이 나뭇잎색이지만 곧 벼의 색깔을 닮아 갈 것이다.
밤송이들이 가득 열린 나무들도 살이 찐 밤톨들이 세상을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쓰는 계절이 올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서서히 나이들어간다.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