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걸으면 내가보인다/여기저기 코스

대마도트레킹 2번째날

carmina 2017. 10. 27. 22:16

둘째 날

아침에 선착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길가의 벽에 세워져 있는 벤딩머신의 겉을 수건으로 닦는 남자를 보았다. 커피자판기 같지 않고 물 같은 액체가 흘릴 필요가 없는 벤딩머신을 청소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문득 숙연해지는 것은 왜일까? 더 놀라운 것은 그 벤딩머신이 옆에 써있는 것을 보아 코카콜라에서 운영하는데 청소하는 남자도 코카콜라 유니폼을 입었다. 이런 단순함을 우리는 지키지 않는다.


길가에서 도로 공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유니폼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지 잘 알 수 있다. 나는 직장생활동안 평생 건설업무를 맡아 온 이로서 일본인들의 서류가 얼마나 꼼꼼한지 잘 알고 있다. 40년 전 우리가 그러한 서류를 따라 일을 하며 국제화 감각을 익혔고 그로 인해 우리도 세계가 인정하는 기술강국이 되었다고 하면 남들이 알까? 나는 그걸 알고 인정한다.

우린 단지 그들이 만들어 놓은 매뉴얼대로 따랐고 나중에는 그 것이 우리의 매뉴얼이 된 것 뿐이다.

오늘은 등산을 겸한 트레킹이다.

버스로 한참을 달려 대마도의 남쪽 끝 이즈하라의 다테라야마지역에 있는 아유모도시 자연공원이 있는 원시림으로 들어갔다.

 

 


길은 세가와 강을 가로지르는 목조로 된 긴 외나무다리를 건너며 시작되었다. 그 다리 밑의 계곡에는 길이와 크기가 거대한 납작바위가 있어 일행들은 길을 걷기 전에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바다로 나갔던 은어가 이 강을 힘차게 헤엄며 돌아온다고 한다.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장관일까?
그 위에는 야영장이 있고 통나무로 된 화장실이 있다. 이 곳에도 눈을 돌려 보아도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텐트를 치도록 만들어 놓는 넓은 나무 평상도 오래되긴 했지만 사용하지 못할 정도로 훼손된 것은 없었다.

바로 한문대로 읽으면 용량산이라는 곳의 등산을 시작했다.
특별히 등산객들이 많지 않았는지 빨간 리본 하나로 표시된 등산로에는 등산로의 흔적이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이 산의 나무들은 개인소유가 아닌 듯 어떤 목적을 가지고 심어 놓은 것 같지는 않고 나무들의 수종도 여러가지다.

그 많은 나무들이 이리 저리 엉켜 있다. 바닥에 떨어져 뒹구는 나무는 썩어가고 있고 발로 밟으면 어떤 가지들은 부스러질 정도로 오랜 세월이 지났다.

마치 정글 같은 이 곳 숲에서 오래 살면 내 몸에도 이끼가 생길 것 같았다. 내 피부도 서서히 나무들같이 껍질이 벗겨질 것이고 저렇게 쓰러져 세월지나면 가루가 될 것이다. 우리도 저 나무와 같이 만물의 작은 한 부분일 뿐이다.

일행들은 뿌리조차 거대한 나무의 뿌리 사이에 들어가 사진찍기를 즐기고 누군가의 제의로 산속에서 작은 기타를 치며 싱어롱을 즐기기도 했다.

가끔 언덕길에 올라가는 곳에 나무를 끈으로 이어 놓았지만  그 흰 색 비닐 끈 조차도 오래 전에 묶어 놓았는지 실같이 갈라지고 있다. 나는 지금 서서히 심연으로 들어가고 있는 듯 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작은 탄성들이 여기 저기 들린다. 이렇게 좋은 곳이 있을 줄이야..

트레킹을 좋아하는 나는 가능한 억지로 산에 길을 만들어 걷게 만든 북한산 둘레길 같은 곳은 선호하지 않는다. 그런 곳은 벤치와 화장실 등 각종 편의 시설이 있으니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고 그로 인해 길이 시끄러워지며 점차 지저분해 진다. 사람들이 몰리면 앉아 쉴 곳도 마땅치 않고 구석 구석 남모르게 감추어 둔 쓰레기들을 볼 때마다 정나미가 떨어짐을 어쩔 수가 없다.

아마 국내의 어느 산도 차가 다니는 곳에서 근접한 곳에 이런 멋진 원시림이 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길로 추정되는 곳에 거대한 나무가 쓰러져 길을 가로막고 있어 우린 겸손하게 낮은 자세로 그 길을 통과하고 때로는 커다란 바위의 근엄함에 돌아가야만 했다. 이 곳은 산을 타는 즐거움이 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뿌듯함도 있다.

비록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충분히 땀을 흘릴 정도로 가파르고 등산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으니 바위들에는 이끼가 많아 조심스러웠고 어쩌다 넘어질 듯해 나무를 잡으면 오래되어 삭아 버린 나무라 힘없이 부러지기도 하여 몸의 균형을 잃을 뻔 하기도 했다.

용량산의 정상은 겨우 사람 몇 명 서 있을 공간밖에 없어 올라오는 사람들을 위해 얼른 자리를 내 줄 수 밖에 없었다. 한 참을 내려오다 보니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다. 알고보니 산을 올라오지 않고 중간에 돌아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특별히 길로 표시된 것은 드문 드문 걸려 있는 빨간 리본밖에 없어 몇 명이 잠시 길을 잃기도 하고 다 내려와서는 버스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갈림길에서 또 한 번 길을 잃어 갔던 곳을 2번이나 가는 알바를 하기도 했다.

울창한 원시림이 있는 가파른 산에서 내려오니 어느 순간 정글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아 다리의 뻐근함보다는 뿌듯함의 느낌이 더 좋았다.

점심은 인근의 란테이라는 곳에서 생선회 몇 조각과 덴뿌라가 몇 개있는 벤토를 먹었다. 곁들인 고구마로 만들었다는 국수는 우리 나라 정선에서 먹는 올갱이 국수와 비슷했다.

버스를 타면 늘 자동적으로 재생되는 가이드의 일본에 대한 설명은 마치 교과서를 읽는 것 같아 졸음부터 오는 것은 모든 여행객이 비슷할 것이다.

대마도는 원래 하나로 된 섬이었다. 그러나 1900년대 일본군 함대가 동서로 빠르게 지나가기 위해 섬의 중간쯤에 해협을 만들고 그 뒤에 위에 민관교라는 이름의 ㅠ다리를 놓았다. 유독 빨간 색깔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이라 이 색깔의 다리도 빨간 다리다. 그 다리위를 걸었다. 약 30미터 높이의 다리에 서니 멀리 바다에 깊이 내륙으로 들어오는 수로가 보였다.

다음은 아소만의 앞바다를 사방으로 볼 수 있는 에보시다케 전망대를 올랐다. 전망대 바로 앞까지 버스가 올라가니 누구나 쉽게 전망대에 접근할 수 있다.

그 곳에서는 마치 우리 나라 남해의 리아스식 앞바다처럼 작은 무인도들이 바다의 넓은 공간을 갖가지 모습으로 메우고 있었다. 무인도라 그런지 그 섬들은 모두 푸른 숲으로 가득 덮여 있다. 반대편으로 바라보니 숲 사이에 일본의 신화가 있는 신사의 빨간 지붕이 보였다. 그 높은 곳에 마치 무인기같은 매 한 마리가 천천히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

전망대 아래에서 파는 찹쌀로 만든 하얀 붕어빵이 맛이 있다기에 우리 모두 재미삼아 붕어빵 집을 털었다.

일본은 모든 것이 신이다. 워낙 신이 많아 아무리 선교사들이 노력을 해도 기독교나 불교 그리고 이슬람교가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그 이면에는 일본이 자연재해가 너무 많아 모든 것을 각종 신의 뜻으로 돌리는 풍습이 있어 특정 신의 능력을 믿지 않는 까닭이라고 생각된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어느 나쁜 사람이 사형을 당하면 그 사람조차도 신으로 모시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어느 나라나 재미있는 신화가 있다. 유럽여행을 하면서 그리스 신화와 희랍신화 그리고 로마신화를 모르면 여행은 그저 둘러본 것 뿐일 것이다. 신화를 알면 여행이 재미있어진다. 그 신화가 서려있는 곳이 지금 방문한 와타즈미 신사다.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긴 긴 이야기를 차를 타고 가며 듣고 이젠 버스에서 내려 그 신화의 물건들을 보러 간다.

일본의 신사에 가면 어디든 있는 우리네 홍살문 같은 도리이가 있다. 도리이는 일본말로 새라는 뜻이다. 늘 그렇듯이 건국 신화는 동물과 인간의 결합으로 만들어지고 그런 상징물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보여진다. 도리이도 그런 상징물에서 만들어졌다. 도리이에 묶여 있는 짚으로 만든 끈에서 이들이 농사를 짓는 민족임을 알 수 있고 바다로 향해 뻗어 있는 도리이는 일본이 바다가 주 생활의 터전임을 추측할 수 있다. 신화라는 것이 워낙 얼키고 설킨 이야기로 들은 것을 글로 쓰기는 어렵다. 이 신화가 있는 길을 몇 명의 젊은이들이 조깅하고 있다.

그 곳에서 걷기 모임에서 단체로 온 사람들 외에 개인적으로 온 사람들 몇 명 만 렌터카를 이용해서 바람의 언덕과 노을의 언덕이 있는 센뵤마끼야마를 올랐다. 좁은 길에 버스가 가기 어려워 어차피 단체로 오기는 조금 힘든 곳이다. 

올라가는 좁은 길에 바람에 꺾어져 날라온 작은 나뭇가지들이 차 바퀴에 또 한 번 잘려나간다. 한참을 달려 올라가 차를 세우고 바람의 언덕에 서니 입에서 탄성이 절로 나온다. 발전용 풍차가 하나 우뚝 서 있는 이 산에는…이 산에는… 온통 억새밭이다. 

바람에 날려 억새가 이리 저리 물결친다. 음악이 있으면 좋겠다. 요한 스트라우스의 ‘푸른 다뉴브강의 물결? 아니면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OST였던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의 2악장? 그 모든 느린 선율이 이 풍경에 어울릴 것 같다.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며 내게 말을 거는 것 같다. 너는 나처럼 살아라.
억새는 저편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끌어안고 있다가 멀리 반대편 바다로 바람을 날려 보내고 있다.
대마도에서는 이 곳 하나만 봐도 충분하다. 연인이 있다면 이 곳 언덕에 앉아 어깨를 기대고 조용히 노을을 바라보고 싶을 것이다.

이 멋있는 광경을 보고 주체할 수가 없어 나는 하늘로 날랐다. 노을이 지는 것을 보고 싶었지만 약속되어 있는 온천을 즐기기 위해 급히 산을 내려왔다. 내 품에 가득 들어 있는 찬 바람을 뜨거운 온천물로 데워 나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그 날 저녁은 더 뜨거웠다.
단체 일행들은 식사후 각자 호텔로 돌아갔고 페루에서 온 기타맨과 걷기의 달인 우클렐레맨 그리고 지리산의 여자들이 토끼세끼의 3층에 모여 밤 늦게까지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고 한국어와 일본말이 합성된 변종어로로 놀았다. 그리고 늦은 밤에 노래소리를 듣고 찾아 온 인근 한국선교사님이 합세해 또 한 번 거룩한 노래와 팝송으로 밤을 즐겼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는 덜컥 그 선교사님의 제안을 들어 줄 수 밖에 없었다.

그날은 우린 일본식 가옥에서 다다미방위에서 일본사람들을 흉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