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영화속 내생각

흑백영화 컴온 컴온 (C'mon C'mon)

carmina 2022. 8. 5. 21:20

2022. 7

내가 언제 흑백영화를 보았던가?

오래전 영화 '남과 여'에서 흑백 장면이 나왔던 기억이 얼핏 흐른다.

영화 제목 '컴온 컴온'은 상대방에게 얘기나 행동을 하라고 격려하며 부추길 때 쓰는 말이다.

과연 우리는 자녀의 교육을 시킬 때 이런 격려를 하는 부모가 있을까?

'시키는 거나 제대로 하라'는 우리네 부모님들의 고압적인 자세는 거의 대부분의 한국 사회의 모습일 것 같다.

나 또한 그렇게 자랐었다.

형님들이나 부모님에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면 

'하라는 공부나 제대로 하라'라는 식의 답변이 돌아오니 감히 내 생각을 별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자랐다.

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을 얼핏 얘기했을 때 부모님이 생각하시는 음악은 '딴따라'외에는 없었다. 

그러나 자라면서 생각해 보니 나는 음악을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가족과의 대화도 거의 없었다.

아침에 학교를 가면 도시락을 2개 싸준다.

하나는 점심, 하나는 저녁. 

방과 후 내가 보내는 곳은 도서관이었다.

형제들과의 대화도 나는 불가능했다.

큰형님은 늘 대학 친구들끼리 어울렸고, 둘째 셋째 형님은 공장에 다니셨기에 늘 늦게 들어오셨다. 

누님도 일찍부터 산업 전선에 뛰어 들었고, 바로 밑에 동생은 중학교 때부터 동네 형님 꼬임에 빠져 

담배와 술을 하며 다녔고, 그나마 얘기가 가능한 것은 막냇동생이었는데 

그마저 나이차로 인해 같이 만나는 시간이 거의 없었고, 

나는 늘 도서관에서 늦게 오니 더욱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 

대개 가족의 이야기는 둥그렇게 앉은 저녁 밥상머리에서 나오는 법인데

우리 집은 식사 시간에는 감히 누구도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양반가문의 불문율이 있었다.

늘 듣는 한 마디는 '빨리 밥 먹고 네 방에 가서 공부하라'라는 말뿐. 

따라서 나는 형제들이나 부모님과 거의 대화를 할 수 없으니 늘 조용한 아이였다.

영화의 주인공 조니의 낯이 익은데 '누구더라' 하고 유심히 보니 빅 히트 영화 '조커'의 주인공인 호아킨 피닉스.

그 영화에는 완전 갈빗대가 보이는 체격이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살이 찌고 배가 불룩 튀어난 중년으로 나온다.

라디오 저널리스트인 조니가 하는 일은 아이들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의 삶과 꿈꾸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녹음하는 일이다.

일을 하다가 결혼 한 여동생을 지나가는 길에 찾아갔는데 

그만 여동생의 남편 즉 제부가 몸이 아파 여동생이 잠시 집을 떠나 있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삼촌이 9살의 아들, 즉 조카 제시와 같이 지내게 되었다.

일종의 로드무비다.

남에게 이야기를 시키는 것이 직업인지라 일상적인 생활에서도 조카에게 자꾸 이야기를 걸고 녹음을 한다.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밥을 같이 먹으면서, 같이 잠을 자면서 둘은 끝없이 이야기한다.

제시의 이야기 투를 통해서 제시가 평소에도 엄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추측된다. 

즉 이야기할 수 있는 집안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둘이 처음 만났을 때 들리는 OST가 귀에 익는 노래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서곡. 

오페라 마술피리의 파파게노의 노래같이 삼촌과 조카가 이야기하는 과정들이 재미있다.

'자, 지금부터 이야기하자'라고 하며 멍석을 깔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늘 어디서나 질문하고 받아주고 하는 식이다.

식사를 같이 하고, 목욕을 같이 하고, 산책을 하며, 학교에 오고 가며 둘은 끝없이 이야기한다.

부끄러워하거나 이야기하기를 주저할 때 삼촌이 조카에게 하는 말이 '컴온, 컴온'이다.

그러나 이야기라는 것은 늘 갈등이 싹트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미운 일곱 살'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갈등도 대화로 풀어내야 한다. 

제시의 엄마가 아빠의 병이 심해 집을 장기간 떠나있어야 할 때

조시가 제시의 등교를 도와주기도 하지만 작은 사건으로 조니와 제시와 갈등이 생겨

둘이 엄마를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은 대화를 유도하는 참 좋은 도구다.

누군가와 같이 대화를 하고 싶다면 같이 여행을 떠나기를 권한다. 

특히 걷는 여행을 강추한다.

여행은 늘 실수가 동반되니 서로의 이해가 필요하고

눈에 보이는 자연의 사물로 인해 늘 좋은 기분으로 대화의 물꼬가 트일 것이다. 

그리고 여행은 늘 예견하지 않았던 일로 불화가 생기기도 하지만 그것들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더 큰 우정이 생긴다. 

대개 광화문의 씨네큐브에서는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극장 내의 조명을 키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전통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위 사진의 멋진 나무는 어디인지 궁금하다.

 

그런데 오늘은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가고 마지막에 필름 회사 로고가 나올 때까지도

자막으로 둘의 대화가 이어지니 꼼짝없이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그 대화들을 기록하고 싶었다. 

평소 내가 잘 가는 씨네큐브에는 관객이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많아야 10~20명.

그런데 오늘은 어느 젊은이들 단체인지 약 50명 인원이 뒷자리를 가득 채웠다.

그들은 오늘 아주 멋진 혼숫감을 준비한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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