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살며..감사하며..

복권이 맞았다

carmina 2022. 8. 6. 21:09

복권을 사는 경우가 내 인생에 살아온 날 수에 비하면 거의 없다시피 한다.

직장다닐 때 가끔 사보기는 했지만 어느 날 주말마다 TV 앞에서 

'쏘세요' 하면 화살을 당기며 번호를 맞추어 보던 그 모습이 초라해 보여 이후 사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혀 사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쩌다 꿈이 좋으면 혹시 내게 좋은 일이 있으려나 기대하면서 한 두번씩 사보기는 했다.

그래도 3자리 이상 맞아 본 적이 없으니 그냥 잊고 지냈는데...

지난 4월 초 토요일, 아내와 부천에 있는 정지용 향수길을 걷고 집으로 올 때 조금 멀기는 하지만 

왔던 길을 되돌아가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부천역 앞을 지날 때 둘이 오랫만에 이삭토스트에서 점심을 샌드위치로 간단히 해결하고

늘 퇴근 때 마다 보는 복권판매대.

금요일 저녁 퇴근 때는 그 앞에 늘 길게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을 자주 보았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기 위해 늘 그 옆을 지나면서도 호기심이라도 그 줄에 서 있어 본 적이 없었다.

내 평생 지론이 주식투자으로 돈을 모으는 일확천금을 바라지도 않았고

각종 다른 곳에 투자같은 많은 유혹에는 절대 넘어가지도 않았다.

지금의 내 모습은 평생 열심히 직장다니며 생활비를 아껴가며 모은 돈으로 저축하여 돈을 모았고 

남들 계절마다 다니는 해외여행도 소심하여 잘 다니지 못하는 우리 부부라

저축한 돈으로 노후에 힘들지 않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부동산 뿐이라 생각해서

신용이 한참 좋을 때에 몇 개 금융권에서 대출받아 집 한 채 더 사놓은 것이 

좋은 자산이 되어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살고 있다. 

그런데 그 날은 아내와 기분좋게 길을 걸었고 복권판매대 앞에 아무도 없기에

'복권하나 사볼까?' 하고 아내에게 말하고 10,000원짜리 한 장을 내니

한 장에 다섯 줄의 번호가 있는 복권을 두 장 받았다.

그걸 지갑에 두고 아내와 시장을 돌아보며 내가 좋아하는 생선류들을 사느라 잊었었다.

그리고 복권을 언제 추첨하는지 기본상식도 없었기에 굳이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주말이 지나 월요일, 문득 지난 밤 꿈이 생각이 나지 않지만 무척 좋았던 것 같다. 

집에서 PC로 초기화면인 네이버를 보니 얼핏 복권번호가 나와 있기에 그제서야 지갑을 꺼내 보았다.

두 장 중 한 장을 꺼내 번호를 맞추어보는데 첫 줄의 첫 숫자가 다르다.

그런데 두번째 숫자가 같다. 동그라미를 쳤다.

그렇게 친 동그라미가 무려 5개. 가슴이 두근거렸다. 

동그라미를 하나씩 추가할때마다 가슴이 떨렸다.

이럴 수가 있나?

어이가 없어서 한참 들여다 보았다. 

그러면서 혹시 다른 날짜 복권이 아닌가 하고 다시 확인도 해 보았다. 

연이어 다른 숫자들도 맞추어 보았더니 모두 전혀 다른 숫자들이다.

10개 줄 가운데 숫자 6개와 행운숫자 중에 하나도 맞지 않은 무려 5줄, 그리고 한 개 맞은 줄이 4줄.

첫줄을 다시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등수로는 3위.

대개 1등되면 몇 억, 몇 십억 때론 몇 백억까지 받는다는데 숫자 1개만 다르니 적어도 몇 천만원은 받지 않을까?

검색을 해보니 얼마 받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1층은 서울의 농협 본점에서 당첨금을 찾고,

2등 3등은 가까운 농협에 가야 한다기에 근처에 농협의 위치를 확인했다.

걸어가기에는 조금 먼 곳이라고 생각해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운전대를 잡았다가 아무래도

가슴이 두근거려 운전이 어려울 것 같아, 조금 멀지만 걸어가기로 했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도로. 가다가 가슴의 안정을 위해 일부러 잠시 잠시 쉬곤 했다.

무언가 죄를 지은 것 같은 느낌이다. 

농협에 도착해 두리번 거리니 보안요원이 용건을 묻는다. 

복권 당첨된 쪽지를 내 보이니, 창구로 안내해 준다. 

그런데 은행장 자리가 아니다. 나를 은행장실로 안내할 줄 알았다.

종이를 내미니 컴퓨터로 조회가 가능하다며 3등 맞으니 잠시 기다리란다.

창구직원이 축하한다고 말이라도 해 줄 줄 알았다. 

금액을 물어보니 127만원 정도...

그제서야 나는 '애고, 그것밖에 안나와요?'

무척 실망했다.

통장에 넣어달라 할려다가 문득 그래도 횡재라고 생각해서 현금으로 바꾸어 달라고 했다.

그런 돈은 노력없이 얻은 것은 이제껏 처음 경험한 일이니까..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돈이다.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식탁에 던져 놓은 돈 봉투를 늦게 들어 온 아내에게 열어보라 하니 의아해 한다.

사정을 이야기하니, 자기 쓸일 있다고 그 중 50만원을 챙긴다.

그러면서 나보고 복권 맞았다는 이야기를 다른 이에게 하지 말라 한다.

노력해서 돈 벌 생각안하고 나이들어서 요행이나 바라며 복권사는 사람같이 보인다는 이유로...

남은 돈 통장에 넣으니 자동이체되는 각종 고지서들로 인해 그냥 흐지부지 되었다.

차라리 그 돈으로 얼른 좋은 노트북이나 하나 살껄...

그럼 두고 두고 노트북을 볼 때마다 자랑했을텐데...

부뚜막에 오른 고양이가 또 올라간다하는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이후에도 복권 구입은 일부러 피해 다녔다. 

내게 한 번의 행운이 따른 것에 당분간 만족할 것이다.

행운을 바라며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건 내 모습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