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살며..감사하며..

아버지의 연인?

carmina 2022. 8. 7. 21:38

어린 시절에는 가끔 형제들끼리 놀리고자 할 때

'너는 다리밑에서 주워 온 자식이야'

하며 이야기할 때 진짜 나는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 난 자식이 아니고

경인선 철교 다리 밑에서 주워 온 고아로 생각해 눈물을 쏟았던 기억들이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리 모든 형제들은 

어머니의 다리밑에서 주워 온 자식들이었다.

나중에야 그걸 알고 '형도 다리밑에서 주워 왔잖아' 하며 맞받아치며

허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초가집 우리 집 안 방의 문위에 걸린 액자에는 여러 개의 작은 사진들을 넣어 두었는데

그 중 늘 시선을 끌었던 사진 한 장이

아버님이 낯모르는 여인과 서로 선 채로 비스듬히 마주보고 있는 사진이다.

아버님은 늘 하시는 포즈로 양팔을 등 뒤로 넣으시고 

몸집이 좀 있고 그다지 이쁜 모습이 아닌 여인이 키가 큰 아버님을 조금 올려다 보는 모습.

당시는 카메리가 흔치 않던 때라 그 사진은 분명 사진관에서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었다.

누구일까?

분명 친가나 외가의 친척도 아니었다. 

누구인데 온 집안 식구가 다 보고 있는 안방의 문 위에 있는 액자에 넣어 놓았을까?

누구인데 어머니가 낯선 여자와 찍은 사진을 매일 보면서도 아무 말 없으셨을까?

언젠가 궁금해서 어머니께 누구냐고 물어 본 적이 있었다.

술집 여자란다. 

아마 아버님이 인천제철을 다니실 때 퇴근 후 늘 직장동료들과 들르던 술집의 마담같았다. 

아니면 동네의 잘 가시던 술집의 주인이었을까?

어머니께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 저렇게 걸어 놓은 것이라 들었다.

아버님이 그런 실수를 이렇게 대 놓고 망신을 주는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부부싸움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자란 나이기에 그게 궁금했다.

더 궁금한것은 아버님이 그 사진을 걸어 놓게 허락한 것이다. 

잠깐의 실수였겠지만, 한 번의 실수를 두고 두고 혼나는 것같은 인상을 풍기는 모습이다. 

언젠가는 어느 꼬마가 우리 집에 와서 며칠을 묵은 적이 있었다.

누구냐고 물어보니, 아버님이 밖에서 낳은 자식이란다.

그러나 그건 곧 농담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버님은 자식들에게 다정함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는 상당히 엄한 분이셨다.

자식들은 물론 어머님에게도 다정한 모습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어머님하고도 찍은 사진도 형님들 결혼 사진 외에는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밖에서는 어떻게 저렇게 다른 여자와 사진을 찍으실 생각을 하셨을까?

사진의 꼬마는 내 아들의 어린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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