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살며..감사하며..

선생님 저도 암환자였어요

carmina 2022. 8. 14. 22:04

몇 년 전 가끔 용인에 있는 호스피스병원에 시간을 내서 혼자 다녔었다.

그 곳에서는 내가 30년 동안 노래하던 부부 합창단의 여자 단원 한 분이 의사로 계셨기 때문에

무언가 내가 할 일이 있을 것 같아, 집에서 좀 멀기는 하지만, 

가끔 할일 없는 휴일이나, 혹은 휴가 때 이틀 정도를 시간내어 그 분의 주선으로 

환자들을 돌 보는 일을 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환자들이 있는 방은 요양전문가만 들어갈 수 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청소를 하고, 주방일을 돕는 정도였지만,

몇 번을 찾아 가서 눈에 익으니까, 큰 지식이니 훈련없이도 환자를 돌보는 일도 맡았고,

환자들을 목욕하는 일과 환자복을 갈아 입히도 일도 거들고 혹은 막 임종한 환자의 처리도 거들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자신이 호스피스 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침대에 누워 있기 싫어 자꾸 밖으로 나갈려고 하지만, 안정제를 투약하여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가끔 침대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그런 분들을 밤새 옆에서 지켜야 하는데, 깊은 밤중에 곤히 잠든 환자를 보며 간호사들이 환자 옆에 붙어 있는 내게 조금 눈을 붙이고 오라 해서 나간 사이에 환자가 침대에서 떨어졌다는 얘기에 안타까운 적도 있었다. 

여러가지 에피소드가 많지만 그 중 하나를 글로 쓰자면,

어느 날 내가 맡은 환자가 조용한 인텔리환자였다.

그는 자신이 얼마 뒤에 죽어야 하는 운명을 아는데도 책을 읽고 계셨다.

그러나 침대에서는 일어나지 않으셨다. 

기독교단체들의 후원을 받아 운영하는 호스피스 병원에서는 매일 오전과 저녁에 홀에서 예배를 본다. 

그래서 조금 믿음이 있는 환자들은 휠체어를 타고 나오거나 혹은 천천히 걸어서 예배를 보는데

내가 간호하는 남자 환자는 머리맡에 성경책이 있는데도 예배를 보러나가지 않으셨다.

그 성경책이 있다고 해서 그 분이 교회를 다니는 것이라고 단정은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대부분이 방에서 잠시라도 나가고 싶어 예배에 참석하는데,

내가 그 분에게 같이 나가자고 권해도 그 분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어느 날 내가 그 분에게 이야기했다. 

"선생님. 저도 몇 년 전에 암수술을 했습니다. 

미리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마지금 쯤 선생님처럼 이렇게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여기 와서 봉사하는 것은 내 생명을 구해 준 하나님께 은혜를 갚는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마지막 남은 생은 무언가 그 분 보기에 기쁜 일을 하고 싶어서 오는 것입니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그 다음 날 아침 예배에 그 분이 예배알림을 안내 방송이 있을 때 나보고 자기 좀 일으켜 달라고 하시더니 예배를 보는 문 밖의 홀 옆으로 나오셔서 의자에 앉으셨다.

그 곳 병원의 목사님은 환자들을 모두 알고 계시기에, 그 분이 의자에 앉아 계신 것을 보고 무척 기뻐 하셨다.

나는 그 날 오후 쯤에 집으로 돌아왔기에 그 이후 그 분의 생사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분이 이후에도 돌아가실 때까지 예배에 참석했으리라고 믿는다.

내가 암 수술을 한 뒤에 우리 가족에게 부탁해서, 그 병원에서 예배를 볼 때 우리 가족이 특송한 번 하자고 권유해서 같이 먼 길을 가서 찬양하고 청소 봉사를 하고 온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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