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것들/노래 한곡의 추억

나의 애창곡 (96) 한번쯤

carmina 2017. 7. 18. 10:47

 

 

한번쯤(송창식 작사/송창식 작곡)

한번쯤 말을 걸겠지 언제쯤일까 언제쯤일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붙여 오겠지
시간은 자꾸 가는데 집에는 다 와가는데
왜 이렇게 망설일까 나는 기다리는데
뒤돌아 보고 싶지만 손짓도 하고 싶지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기다려 봐야지

한번쯤 돌아보겠지 언제쯤일까 언제쯤일까
겁먹은 얼굴로 뒤를 돌아 보겠지
시간은 자꾸 가는데 집에는 다 왔을 텐데
왜 이렇게 앞만 보며 남의 애를 태우나
말 한번 붙여 봤으면 손 한번 잡아봤으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천천히 걸었으면

기다려 봐야지
천천히 걸었으면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 집에서

내가 다니던 학교에 등교하기 위해서는

자그마치 3개의 여학교 근처를 지나가야 한다.

따라서 늘 그렇듯이 같은 시간에 다니니

한번도 아는 척은 안해도 오며 가며

눈에 익은 여학생들이 참 많았다.

 

때에 따라서는 아침에도

그리고 오후 방과후에도 얼굴을 보는

학생들이 많았었고..

어떤 여학생은 주말에 시립도서관에서 가서도

얼굴을 마주치기까지 했었다.

정말 반가왔지만 내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던

시절이라 감히 이야기를 건네지 못했다.

 

내가 알기론 이 노래는 내가 대학시절에 처음 나온 것 같다.

당시 가사를 생각하면서

어쩌면 이렇게 떠꺼머리 학생들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했는지

기가 막히게 작사했구나 하고 감탄했었다.

 

고교 학창시절에 연애를 안했다면 거짓말일테고

그래도 한 여자만 같이 다닌 순정파다.

교회를 다녔지만 나는 부모님 몰래 다니는 처지라

남녀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별로 없었다.

 

용기가 없는 내게 여자를 만날 기회가 있던 곳은

당시 유일하게 남녀학생들이

같이 공부하는 입시 영어학원이었다.

영어를 배운 걸로 보아 고2시절일 것이다.

나는 예비고사 외국어를 영어가 아닌 불어로 선택했기에

고 3시절 영어는 특별히 따로 배울 필요가 없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데

학원강사의 진한 자줏빛 양복이 마치 손가락으로 훑어 내면

무언가 솜털이 묻어날 것 같은 고급 옷감이라 신기했는데

후에 생각하니 그게 벨벳인걸 알았다.

초등학교 3학년이후 남자들만 있는 반에서 공부하다가

단발머리 여자들이 앞에서 아른거리니

공부가 제대로 될리가 있었을까? 

 

그 곳에서 한 아가씨를 만났다.

그 때의 감정이 이 노래같았다.

어쩌다 잠깐 쉬는 시간에 이야기라도 붙여 보았으면 하는

마음은 있으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내 소심함보다

여자측에서 더 적극적으로 내게 대화를 걸었다.

학원에서 차마 같이 옆에 앉지는 못해도

서로 같은 열에 앉아 눈을 마주치곤 했었다.  

그러나 당시 우리 집이 가난해서 학원비를 댈 형편이 못되었기에

원에서의 만남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

어느 날 탁구나 같이 치자며 내게 일요일 8시에

탁구장에서 만나자 했을 때 나는 당시만 해도

저녁 8시면 이미 우리 집에서는

이미 학생의 신분으로서는 한참 늦은 시간이었기에

결코 그게 저녁 8시를 말하는 것을 상상도 못하고

일요일 아침 8시에 탁구장에 가서 기다리는데

탁구장 문도 열지 않은 것을 투덜거리다가

바람 맞았다고 생각하고는

그만 그 날 저녁 내가 오히려 여자를 바람맞힌

우스꽝스런 기억이 있다.

 

고교시절 내가 인천 Sing Along Y를 다녔기에

우리가 가끔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은 그 곳 뿐이었다.

 

만나기 힘들 때는 공중 전화로 대화하곤 했는데

어느 날 무심코 돌린 전화번호가 우리 집인걸 모르고

아가씨 이름을 대며 바꿔 달라하니 그런 여자 없다고 하는데

그만 그게 우리 누님의 목소리인 걸 알고 얼른 끊었다.

누님이 알았을려나? 아직도 물어 보지 않았다.   

 

언젠가 그 아가씨 집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물론 아가씨의 친구들이 같이 있었다.

그 때 보여 준 트윈폴리오의 LP와

축음기에서 듣던 노래들을 잊지 못한다.

 

이후 나는 무사히 대학에 합격했으나

대학을 가지 못하고 포기한

그 여학생은 나를 배려하는 것인지

자신하고는 나와 격이 안맞아

같이 다니지 못하니 헤어지자고 했으나

그래도 내가 억지로 우겨

대학 1년 초반에는 같이 대학축제까지 다녔다.

 

그러나 어느 때 부터인가 그녀가

대학생같지 않은 다른 남자와 같이 다니는 것을 마주 친 이후

그녀는 나를 의도적으로 피하다가 아주 떠나갔다.

인천이라는 곳의 젊은이들 노는 곳이 좁다 보니

가끔 둘이 데이트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남자는 내가 보기에도 조금 건달끼가 있어 보였다.

 

한참 세월이 몇 년 지나 거의 잊혀질 무렵

공교롭게도 그 남자와는 군입대를 같은 날 하게 되었다.

어느날 논산훈련소에서 같이 훈련을 받다가

슬쩍 그 여자에 대해서 물었더니

결혼할거라 대답했다.

그 때 이미 둘이는 깊은 관계에 있었던 것 같다. 

제대 이후로 제 3자를 통해서 둘이 결혼했다는

짤막한 소식만 들었다.

 

이름은 아직도 기억한다.

나와 성은 같지만 한문이 전혀 다른 정씨이기에

한참 연애할 때 안심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잘 살고 있을까?